수 신 각 언론사 사회부, 복지부, 노동부, 미디어, 보건의료전문지 담당
발 신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제 목 [성명서] 평등한 진료실에서부터, 진료실을 넘어 평등한 사회로 — 517성소수자평등의날을 맞아
날 짜 2026. 5. 18 (월)
[성명서] 평등한 진료실에서부터, 진료실을 넘어 평등한 사회로 — 517성소수자평등의날을 맞아

2026년 5월 16일, 광화문 광장에는 다시 무지갯빛 함성이 울려퍼졌다. 「517성소수자평등의날 기념 2026 성소수자 평등대회」 참가자들은 “혐오를 넘어 평등을 쟁취하자”고 선언하며, “단순히 혐오·차별받지 않을 권리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온전한 평등과 권리를 쟁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는 이 함성에 깊이 공감하며, 의료인의 자리에서 그 평등의 길에 함께 서기 위해 이 성명을 발표한다.
1.의료기관은 성소수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성소수자의 의료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실태조사들은 트랜스젠더의 다수가 의료인의 지식 부족으로 진료를 우회하거나, 의료기관에서 차별과 혐오표현을 경험해 왔음을 일관되게 보여 주며, 2024년 Lancet지의 성소수자 건강 리뷰는 이러한 구조적 낙인이 성소수자의 건강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는 보건의료 통계 바깥에 머물고 있다. ‘인구주택총조사’, ‘국민보건의료실태통계조사’, ‘가족실태조사’ 등 국가승인통계조사에서 성별 정체성 통계가 별도로 수집되지 않는다는 점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 보이지 않는 인구집단의 건강은 정책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2. 한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진료실의 차별은 양·한방을 가리지 않는다. 본명 호명, 성별 이분법 예진표, 가족관계를 묻는 절차, 진맥과 침구 치료의 신체 접촉 — 한의 진료의 모든 동선이 누군가에게는 자기 정체성과 충돌하는 지점이 된다. 한의 진료의 특수성 — 의복 탈의, 진맥과 복진을 포함한 신체 접촉 — 은 이 충돌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한의원에서 성소수자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거나, 신체 노출을 꺼려 치료 자체를 피한다. 커밍아웃으로 인한 스트레스의 원인을 직장 문제로 돌려 말하거나, 트랜지션을 위해 복용 중인 호르몬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단순히 한약 처방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한의사는 정확한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고, 환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치료에서 다시 한 번 멀어진다.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관념은 한의원의 일상적 동선에 깊이 스며 있다. 환자의 성별을 추정해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명하기, 난임 치료를 이성 부부 중심으로 설계하기가 그 예다. 또한, 음양론을 단순화해 “남자는 양, 여자는 음”으로 설명하거나, 여성에게 이성애적 부부관계를 전제로 임신과 출산을 묻는 관행이 그러하다. 어떤 한의학 입문 교재는 트랜스젠더 환자를 음양이 뒤바뀐 병리적 존재로 서술하기도 한다. 한의학 속에서 성소수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기피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한, 이 언어는 환자에게 배제의 신호로 작용한다. 사실 한의학 자체가 성별 이분법인 것은 아니다. 한의학은 본래 성·젠더·성적 지향의 다양한 변이를 포용할 수 있는 학문이며, 우리는 그 본래의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
진정으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한의원은 무지개 깃발 한 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의원이라는 공간, 한의사의 태도, 한의학의 임상적 적용 방식, 모두에 내재한 시스-이성애규범성(cisheteronormativity)을 직면하고 뒤흔드는 긴 작업이 필요하다.
3. 한의계가 걸어온 길 —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는 일찍부터 이 작업에 응답해 왔다. 2018년부터 운영해 온 나무진료소에서, 한의계 최초로 퀴어 프렌들리 예진 문항을 도입했다. 진료 기록에 실명 대신 활동명을 기재할 수 있도록 했고, 성별 이분법에 가두지 않는 문항으로 예진표를 다시 썼다. 이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부터 진료가 시작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변화였다.
2022년 청년한의사회 성평등인권위원회 “성소수자 의료” 세미나를 계기로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한의사·한의대생 모임 “홍진단”이 시작되며, 동료들과 학습하고 임상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 모임을 통해 2023년 성소수자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한의약 이용 및 인식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한의 진료실에서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확인했고, 이는 2024년부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와의 한의진료소 경험으로 이어졌다. 2025년에는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 창립에 함께하며, 한의계가 보건의료계 성소수자 의료 연구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잡고자 했다. 그 외에도 매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등 성소수자 행사 현장에서는 의료지원으로 함께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발걸음들을 거듭할수록 한의계의 부족함을 확인해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4. 평등의 길은 곧 건강권의 길이다
성소수자의 평등은 건강권의 전제이며, 건강권의 실현은 평등의 결과다.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는 이 일부의 노력을 한의계의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활동명 호명과 성소수자 친화 예진표를 모든 한의원의 기본으로, 한의대 교육과 임상 보수교육에 성소수자 건강을, 성별확정의료와 한의약의 안전한 결합을 위한 임상 근거 축적을, 그리고 당사자 단체와의 협력 진료 확대를.
진료실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맞이하는 동시에, 진료실 밖에서도 평등의 길에 함께 서겠다. 차별금지법은 의료 영역에서의 차별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둑이며, 혼인평등은 동성 배우자의 보호자권·의료동의권의 문제이고, 성별인정법은 신체 침해 없는 성별 정정을 통해 의료 강제로부터 트랜스젠더를 보호한다. 이 세 가지 요구는 곧 의료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소수자의 권리와 평등, 우리도 함께 쟁취한다.
혐오를 넘어 차별을 깨고, 평등으로 나아간다.
진료실을 평등하게, 진료실을 넘어 평등한 사회로!
2026년 5월 18일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문의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 | chunghan218@gmail.com |chungh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