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7월 22일부터 25일, 3박 4일 동안 보건의료계 학생들과 함께 나가노민의련으로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2026년 7월 22일, 전국의 보건의료계열 대학생 12명이 사의련(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의 연두 선생님과 함께 일본으로떠났다. 우리가 만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이하 청한)의 제안으로 민의련(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 연수에 참가하겠다고 결정한 이후로 본 연수를 위해 3번의 사전 모임을 가졌었다. 각자 배정받은 주제 – 전일본민의련의 역사적 흐름, 일본의 차액병상료 미징수 원칙,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SDH), 한국과 일본의 아동 의료비 부담 경감 제도 비교, 만몽개척단의 역사 – 에 대해 조사하여 사전모임 때 발표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때 공유한 정보들이 연수의 꼭 필요한 배경지식이 되었다.
비행시간은 짧았지만, 나고야 공항에서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시까지 들어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았던 내게 나가노는 완전히 새로웠다. 긴 이동 끝에 도착한 곳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나가노현의 민의련 회장인 사노 다쓰오 선생님께서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그중 민의련 강령의 첫 문장인 “무차별·평등의 의료와 복지의 실현”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를테면 (사전모임 때 다룬) 차액병상료 미징수 원칙 같은 것이 무차별에 해당하는데, 민의련에서 1인실은 부자가 아니라 1인실이 꼭 필요한 환자들(전염병 환자, 임종을 앞둔 환자 등)에게 배정된다고 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어색한 제도이지만, 돈이 아닌 필요에 의한 병실의 분배가 훨씬 인간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오티가 끝난 후, 한국 연수단과 일본 직원분들이 다같이 저녁식사를 했다. 미리 조사한 식이제한을 반영하여 섬세하게 준비해주신 식사에 굉장히 감사했다. 이렇게 사람 한 명 한 명을 신경 써서 귀찮음을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까지도 민의련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에게 궁금증을 가지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번역기를 사용하며 질문하고 대답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노력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가노는 동서남북 어디에나 산이 있고, 그 산 사이사이에 여섯 개의 분지가 있는 구조인데, 이번 연수 기간 동안 세 군데의 권역을 방문한다. 우리의 숙소가 위치한 마쓰모토시에서 첫 날과 마지막 날을 보내고, 둘째날은 나가노현의 나가노시, 셋째날은 이이다·시모이나 권역을 방문한다. 매일 마을 하나를 둘러보면서 각 지역마다의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있다니!
7월 23일, 나가노 중앙병원에 방문하여 병원장 반바 다카시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민의련 가장 큰 2가지 과제인 SDH(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와 케어의 윤리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SDH는 자기책임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질병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 요인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자기책임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38%라고 한다. 강연자료에 한국의 통계는 언급되지 않아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연구조차 없어서 수치를 명확히 할 수 없다고 한다. 자기책임론이 당연시되어서일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최소한 의료계열 학생들에게는 SDH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SDH와 관련하여 강연에서 인상 깊었던 삽화가 하나 있다. 바로 환경, 돌봄, 의료를 각각 상류, 중류, 하류에 대응시킨 그림이다. 환경에 의해 사람이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기 시작하고, 돌봄이 잘 제공되면 그들을 구출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류에 이르러 의료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의료인들은 보통 하류만 접하고 살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시선을 넓혀 상류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사전모임 때, 노원구에 위치한 마을의원에서 강연을 들었었다. 원장님께서는 매일 오후에는 방문진료만 하시는데, 여러 사례를 들며 각각의 상황에서의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 알려주셨다. 그 처방들이 꼭 의료행위라고만 하기는 어려웠다. 예를 들면 마당으로 나오면서 자주 넘어지는 할머니를 위해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처방이다. 결국 아픔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료에 도달하기 전, 즉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의련에서의 배움이 연수와 일본 민의련에서의 연수경험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점심 전후로 나가노 중앙 케어 센터에서 재활운동을 체험해보고, 노인보건시설 후루사토(일본어로 고향이라는 의미)를 방문하고, 여러 시설을 견학하며 개호(신체나 인지 기능이 저하된 사람의 일상생활을 돕는 돌봄) 사업에 대해 배웠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머무는 시설을 걸으면서 최근에 읽었던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의 내용이 계속 떠올랐다. 이 책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얘기한다. 보통의 요양원은 생명 연장에 초점을 맞추어 입소자들의 삶의 질은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입소자들이 “여긴 집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개인의 우선순위가 존중되는 집에 대한 갈망을 품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가노에서 방문한 시설들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 안에 원하는 전자기구를 들일 수 있다는 점, 충분히 식당 하나로 수용 가능한 인원임에도 사이가 틀어진 관계를 고려하여 두 개의 식당을 설치한 점,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텃밭을 두어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높이는 활동이 있다는 것, 혼자 변기에 앉고 일어나고,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 등이 인상적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요양원을 실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이런 곳이라면 보통의 요양원보다는 훨씬 ‘고향’ 같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마쓰모토시로 돌아와서 사의련의 두 선생님께서 사주시는 저녁을 먹고, 연수단끼리 중간점검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7월 24일, 버스를 가장 오래 타는 날이다. 얼마나 교통이 불편하면, 일본 내에서 도쿄로부터 가장 오기 힘든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지역이다. 견학 장소가 개관하기 전, 잠깐 마을을 돌아보았다. 이 곳에서는 의사 1명이 5개의 진료소를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진료를 본다고 한다. 38도에 이르는 뜨거운 날씨였지만, 푸릇함을 담기에는 더할나위 없는 맑은 날이었다. 2시간을 이동하고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어렵게 도착한 곳에는 이번 연수 중 가장 큰 충격을 준 곳이 있었다. 만몽개척평화기념관이다. 만몽개척단은 1930~1940년대에 일본 제국이 만주 지역을 식민화하기 위해 일본 농민들을 이주시킨 집단이다. 나가노는 원폭 피해지역이 아니고, 현재 일상에서 전쟁의 흔적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지역이지만, 만몽개척단이라는 전쟁의 역사가 깊게 남아 있다. 지금 나가노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몇 다리 건너면 모두 이 아픔을 겪은 가족이 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제국은 전쟁을 옹호하는 다수의 포스터를 만들어 만몽개척단을 국가를 위한 활동으로 세뇌시키고 홍보하였고, 패전 이후 백 종류가 넘는 포스터를 모두 없애려고 시도하였으나 누군가 몰래 숨겨놓아 지금 기념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포스터를 마주한 순간,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식민지배국의 시민이더라도 피해자임이 순식간에 와닿았다.
버스를 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한국과 일본이 부정적으로 얽힌 역사 때문에 일본인 개인에게 역사적 가해의 책임을 직접 돌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의 화살은 엄한 곳을 향했구나, 피해와 가해는 때때로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구나, 여러 깨달음과 반성이 오갔다. 만몽개척단을 아는 것이 나가노를 방문하는 예의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의 기억이 겹쳐지며 공통점이 보였다. 한 지역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사건이었고, 지금도 그 아픔이 남아있지만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간다는 것이었다.

다음 일정으로는 이이다시의 카나에 공민관에 도착하여 켄와카이 병원 와다 히로 의사 선생님의 어린이 빈곤 워크숍을 들었다. 일본의 아동의료비 제도와 관련한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 병원에 방문한 아동의 생활 상황을 부모의 모습을 통하여 추측한 사례들은 미래에 의료계에 종사할 때 활용할 점이 많아 보였다. 예를 들어 대기실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계속 책을 읽어주는 모습도 의심해볼 수 있다. 이런 힌트들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사무직 모두가 함께 주시해야 하고,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회의 자리도 필요함을 알았다. 흔히 진상이라고 표현할 법한 사람들의 행동에는 어떤 환경적인 문제가 숨어있을 수 있으며,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도와달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저녁에는 일본의 의대생도 함께 모여 식사자리를 가졌고, 이후에는 그간 우리를 도와준 일본인들과 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7월 25일,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며 연수 마무리를 위해 첫 만남의 장소에서 모였다. 오티를 들었던 그 장소였지만 지식이나 마음가짐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감을 발표할 때 모두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감을 준비하며 이번 연수를 되돌아봤다.
가장 예상과 달랐던 것은 의사의 사회적 지위였다. 일본에서는 의료가 한국에서만큼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고, 강연을 통해 만난 민의련의 책임자들도 모두 의료를 영리사업으로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도 민의련의 의료종사자들의 경제적 안정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렴 마무리 토론 때 민의련에 자리 있냐고 묻는 학생이 있을 정도였으니, 우리는 민의련의 좋은 모습을 많이 보고 배우고 온 것 같다.

사전모임부터 각자의 고민을 안고 의료업에 임하는 여러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로서의 추구미를 찾아갔다. 좋은 의사는 결국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애정이 있는, 결국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소외된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전문성보다는 관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전 모임 때 마을의원의 원장님께서 부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내리는 진단, 어린이 빈곤 워크숍에서 빈곤을 알아차리는 예리한 센서는 모두 환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갖추고 싶다.
나가노는 연수가 아니었으면 방문하기 어려웠을 도시이다. 그렇기에 이 연수가 더욱 소중했다. 비슷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과 공감대를 공유하며,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잘 통하지 않는 언어였지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 12명을 도와준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친절 덕에 민의련을 너머 나가노에 대한 애정이 커졌고, 언젠가 이 친절을 다시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만몽개척평화기념관에서 강연자분이 의료인이 왜 반전평화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사실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잘 하지 못하겠다. 의료인의 공부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아직 흐릿하다. 그러나 이 견학이 가장 울림이 컸던 것을 보면, 마음이 반전평화도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년에는 반전평화 연수에 참여하고 고민을 이어가고 싶다. (경희대 한의학과, 이세린 /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